Insight · 방법론

IDEF0란 무엇인가

업무를 그리는 방법은 많습니다. 그중 50년을 살아남아 국제표준이 된 것은 드뭅니다. 미 공군의 공장에서 태어난 표기법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왜 하필 지금 다시 꺼내 보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01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의 의미

소프트웨어 세계에서 50년은 이례적인 시간입니다. 그 사이 등장했다 사라진 방법론과 도구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IDEF0는 1970년대에 정리되어 지금도 국제표준으로 살아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IDEF0가 풀려던 문제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란 이것입니다 — 우리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몇 장의 그림으로 적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그림을, 경영진도 현장도 전산실도 같은 뜻으로 읽을 수 있는가.

02뿌리 — 기계공과 프로그래머 사이의 통역

이야기는 1950년대 후반 MIT에서 시작합니다. 더글러스 로스(Douglas T. Ross)의 연구실은 미 공군의 지원으로 수치제어 공작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본을 대고 깎던 밀링 작업을 컴퓨터가 대신하게 한 기계였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 그 기계에 무엇을 시킬지 사람이 적어야 했는데, 그러려면 기계공이 컴퓨터의 말을 배워야 했습니다.

연구실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쓰는 사람의 언어로 지시를 적게 한 것입니다. “냉각수를 켜라”,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직선으로 이동하라”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훗날 국제 표준이 된 APT(Automatically Programmed Tool)이고, 몇 주가 걸리던 작업이 몇 분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기술 세계 — 프로그래머의 세계와 기계공의 세계 — 사이에 통역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둘 다 자기 분야의 전문가였지만, 쓰는 말이 달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IDEF0의 뿌리는 그림 도구가 아니라 통역입니다.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전문가들을 같은 그림 앞에 앉히는 일.

03공장을 자동화하려는데, 공장을 몰랐다

1970년대 미 공군은 항공우주 산업 전체의 제조 역량을 끌어올리려 했습니다. 한 회사만 지원할 수는 없으니 업계가 함께 쓸 공통 기반을 만들기로 하고, 이를 ICAM(Integrated Computer Aided Manufacturing) 프로그램으로 묶었습니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벽에 부딪힙니다. 공통 기반을 만들려면 먼저 “지금 이 산업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를 적어야 하는데, 그것을 적을 언어가 없었습니다. 그때 공군이 요구한 언어의 조건은 지금 읽어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그 언어가 갖춰야 했던 것

① 현장의 일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할 것 · ② 대상이 방대하므로 간결하고, 필요한 세부를 빨리 찾아갈 수 있을 것 · ③ 배경이 제각각인 넓은 독자층에게 통할 것 · ④ 결과가 어긋나지 않도록 충분히 엄밀할 것 · ⑤ 여러 집단이 나눠 그리고 함께 검토할 절차를 포함할 것.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결정적이었습니다 — ⑥ ‘조직’과 ‘기능’을 분리할 수 있을 것. 회사마다 부서 구조가 다르니, 조직도를 걷어내고 어느 회사에나 똑같이 흐르는 ‘하는 일’만 남기지 않으면 애초에 합의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부서 이름이 달라도 ‘자재를 검사한다’는 일은 어디에나 있다 — 남길 것은 그쪽이었습니다.

이 조건을 만족한 것이 1972년 더글러스 로스와 SofTech이 정리한 SADT(Structured Analysis and Design Technique)였습니다. 공군의 AFCAM 사업에서 채택되어 ICAM으로 이어졌고, 1978년 항공우주 업계 연합이 이 방법으로 산업 전체의 모델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1981년, 공군이 이 방법 가운데 활동 분석 부분만 떼어 정식 규격으로 문서화하며 붙인 이름이 IDEF0입니다. 이름 자체가 그 출신을 말합니다 — IDEF = ICAM DEFinition.

덧붙임 —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IDEF 계열 방법들은 공표 당시부터 공공 영역(public domain)에 놓였습니다. 특정 회사의 것이 아니고, 사용료나 라이선스 없이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50년 뒤 국제표준까지 살아남은 배경에는 이 개방성도 있습니다.

04파리에서 있었던 일

ICAM으로 가기 전, 이 방법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먼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1970년대 초 ITT는 유럽에서 ‘미래의 전화 시스템’ 명세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통화 대기, 착신 전환처럼 지금은 당연한 기능들을 처음 정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다섯 나라의 전문가가 참여했고, 프로젝트는 일정이 밀린 채 멈춰 있었습니다. 영어·독일어·스페인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로 된 문서가 파리 본사 선반에 쌓여 있었지만, 누구도 그 문서들이 서로 맞는지, 빠진 곳은 없는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해법은 로스의 도해 언어로 전체를 다시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명세의 오류와 누락이 드러났습니다 — 이를테면 한 팀이 “저건 저쪽 팀 몫”이라고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 그림 위에서 빈칸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섯 나라의 분석가들은 비로소 서로의 담당 경계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돈 콤벨릭은 이 방법에 제대로 된 이름이 필요하다고 보고 SADT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분석뿐 아니라 설계에도 쓸 수 있다는 뜻을 담았고,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추적 가능성을 꼽았습니다 — 사용자의 요구 하나하나가 그것을 실현하는 요소까지 이어져야 하고, 사용자 관점에서 쓸모를 설명할 수 없는 요소는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05공군 문서에서 국제표준까지

한 조직의 내부 규칙으로 출발한 표기법은 이후 세 번의 관문을 통과하며 공용 자산이 됩니다.

표준이 된다는 것

표준이 된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그릴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불편해 보이지만, 바로 그 제약 덕분에 내가 그린 것을 남이 정확히 읽을 수 있습니다. 악보의 오선지와 음표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06순서도와 무엇이 다른가

업무를 그린다고 하면 대개 순서도(flowchart)를 떠올립니다. 화살표를 따라 ‘다음에 무엇을 하는가’를 좇는 그림입니다. IDEF0는 질문이 다릅니다.

순서도 · 흐름도언제, 다음에 무엇을

일이 흘러가는 순서를 그립니다. 그런데 순서는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뀝니다. 담당자가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면 그림도 다시 그려야 합니다.

IDEF0무엇을 무엇으로 바꾸는가

하나의 활동에 무엇이 들어와, 무엇의 규율을 받아, 누구에 의해, 무엇이 나오는지를 그립니다. ‘무엇을 하는가’는 웬만해선 바뀌지 않습니다.

이 네 가지를 ICOM이라 부릅니다 — 입력(Input)·통제(Control)·산출(Output)·수단(Mechanism). 활동을 나타내는 상자의 왼쪽·위·오른쪽·아래에서 각각 화살표가 붙습니다. 네 방향이 어떻게 붙는지는 홈페이지 첫 화면의 접근법 절에 그림으로 있습니다.

차이의 핵심은 통제와 수단에 있습니다. 데이터가 오가는 것만 그리는 그림은 “무엇이 흘러가는가”까지만 보여 줍니다. IDEF0는 여기에 그 일을 무엇이 규율하고 누가 수행하는지를 더해 한 장에 담습니다. 회사를 실제로 바꾸려 할 때 발목을 잡는 것은 대개 데이터가 아니라 규정과 사람이기 때문에, 이 두 면이 그림에 없으면 무엇을 바꿔야 할지 보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검사 기준서에 따라 검사한다”에서 검사 기준서는 입력이 아니라 통제입니다. 검사를 거쳐도 기준서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변하는 것은 원자재이고, 나오는 것은 성적서입니다. 이 구분을 강제하는 순간, 평소 뭉뚱그려 말하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 갑니다.

여섯 조각의 법칙

IDEF0는 그림 한 장에 활동을 3~6개까지만 놓게 합니다. 이 규칙의 뿌리는 로스가 남긴 문장입니다 — “말할 가치가 있는 무언가에 대해 말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여섯 조각 이하로 말할 수 있다.”

답답해 보이지만 이것이 복잡함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현대 항공기는 300만 개가 넘는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설계자는 그것을 유압 계통·전기 계통으로 나눠 봅니다. 쪼갠 조각들이 엄격하게 이어져 있기만 하면, 복잡함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순서는 자주 바뀝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는가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IDEF0로 그린 뼈대는 기술이 바뀌어도 살아남습니다.

07왜 하필 지금인가 — 기계가 읽는 시대

오랫동안 IDEF0의 가치는 ‘사람끼리 정확히 소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최근 한 가지가 더해졌습니다. 문법이 있는 그림은 기계도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규칙이 명시되어 있으니 기계가 검증할 수 있습니다. 상위에 있던 화살표가 하위에서 사라지지 않았는지, 연결이 끊긴 곳은 없는지를 사람이 눈으로 훑는 대신 프로그램이 짚어 줍니다. 그리고 검증을 통과한 모델은 그 자체로 AI가 다룰 수 있는 재료가 됩니다.

50년 전 공군이 “업계가 어떻게 일하는지 적을 언어가 없다”는 벽 앞에 섰다면, 오늘의 기업들은 “AI를 얹으려는데 우리가 어떻게 일하는지가 적혀 있지 않다”는 같은 벽 앞에 서 있습니다. 자동화의 이름만 컴퓨터에서 AI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유명소프트가 IDEF0를 JSON 기반 언어로 옮겨 다루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백서 IDEF0 기능 모델링 — 디지털 전환의 핵심 방법론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08자주 듣는 세 가지 오해

1970년대 방법론이면 너무 옛것 아닌가요

오래된 것과 낡은 것은 다릅니다. 문자가 오래됐다고 해서 쓰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IDEF0는 50년 동안 세 차례 표준 심사를 통과하며 다듬어졌고, 지금도 유효한 국제표준입니다. 오래됐다는 것은 오히려 그만큼 검증됐다는 뜻입니다.

그리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지 않나요

맞습니다. 국제표준에 맞는 모델을 손으로 그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고, 이것이 그동안 IDEF0가 널리 쓰이지 못한 가장 현실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AI가 대화하며 대신 그리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 설명만 하시면 됩니다.

우리 회사는 그렇게 정형적인 곳이 아닌데요

정형적인 회사만의 도구가 아닙니다. 애초에 이 방법이 다룬 첫 대상은 회사 하나가 아니라 산업 전체였고, 이후 다섯 나라가 함께 쓰던 통신 명세와 미 국방부의 조직 개편에까지 쓰였습니다. 기준은 하나입니다 — 절차가 있는가. 실제로 저희는 약 6.5만 자의 공항 비상계획 예규를 단 몇 장의 구조로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09결국, 일하는 방식의 악보

말은 문자로 남았고 음악은 악보로 남았습니다. 악보라는 약속이 생기고서야 수십 명이 저마다 다른 파트를 들고도 한 편의 교향곡을 이루었고, 그 곡은 세대를 넘었으며, 마침내 기계도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과 부서가 맞물려 하나의 결과를 만드는데, 정작 누구의 산출이 누구의 입력이 되는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IDEF0는 그것을 적는 50년 된 오선지입니다.

지금 우리 회사의 일하는 방식은 어떤 모양일까요.
업무 절차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 설명만 하시면 AI가 받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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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1. Integration Definition for Function Modeling (IDEF0) Federal Information Processing Standards Publication 183 (FIPS PUB 183). 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1993년 12월 21일. 이 글에서 — 표준의 계보, ICAM 프로그램의 배경, 언어가 갖춰야 했던 여섯 요건, IDEF0 명명 경위. 이 표준 자체가 아래 [2]의 1981년 공군 매뉴얼에 근거합니다.
  2. ICAM Architecture Part II, Volume IV — Function Modeling Manual (IDEF0) AFWAL-TR-81-4023. Materials Laboratory, Air Force Wright Aeronautical Laboratories, Wright-Patterson Air Force Base, 1981년 6월. 이 글에서IDEF0라는 이름이 처음 붙은 문서. 원본을 직접 보지는 않았고, [1]에 인용된 내용을 통해 참조했습니다.
  3. Information technology — Modeling Languages — Part 1: Syntax and Semantics for IDEF0 ISO/IEC/IEEE 31320-1:2012. First edition, 2012년 9월 15일. 이 글에서 — 현행 국제표준. 문법과 의미가 정식 규격으로 정의된 상태의 근거.
  4. Clarence G. Feldmann, The Practical Guide to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Using IDEF0 1998년. 저자는 SofTech에서 Douglas T. Ross와 함께 일하며 IDEF0 정립에 참여한 당사자입니다. 이 글에서 — MIT의 APT 이야기, ITT 파리 프로젝트와 SADT 명명 경위, IDEF 계열이 공공 영역에 놓인 사실, 로스의 「여섯 조각」 공리, 데이터 흐름도와의 차이. 이 대목들은 당사자의 회고에 근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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